마지막 영수증 한 장 — 11년 만에 첫 매장을 보냈습니다

 

밴쿠버에서 식당을 한다는 것 · 나라리의 기록
Q. 무언가를 시작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지요. 그런데 잘 끝내고 떠나보내는 데는, 정말 용기가 필요 없을까요?
창업과 성장의 이야기는 세상에 넘쳐납니다. 하지만 '잘 보내는 법'을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. 지난 6월 30일, 저는 고수의 시작이었던 첫 매장 — 카데로 지점을 떠나보냈습니다. 인수부터 헤아리면 꼬박 11년이었습니다.
밴쿠버 한식당 고수 카데로 지점 매장 전경 — KOSOO 간판과 832번지 입구
11년을 함께한 자리 — 고수의 첫 매장, 카데로 지점
3줄 요약
  • 2015년, 설렘으로 인수했던 고수의 첫 매장 카데로 지점을 11년 만에 떠나보냈습니다.
  • 첫 손님을 기다리며 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밤들,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던 시절까지 — 사연이 참 많았습니다.
  • 잘 시작하는 것만큼 잘 보내는 것도 실력이라는 걸, 마지막 영수증 한 장을 정리하며 배웠습니다.

1. 현상 — 마지막 영수증 한 장

7월이면 저는 늘 지난 영수증들과 씨름합니다. GST 리포트를 준비해야 하니까요. 올해는 카데로 매각을 마무리하고, 직원들의 재배치와 여러 후속 프로세스를 챙기고, 캘거리로 짧은 로드 트립까지 다녀왔더니,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7월 하순이더군요. 그렇게 밀린 영수증을 한 장씩 넘기다 문득 손끝이 멈췄습니다. 카데로 지점의 영수증을 정리하는 일이,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걸 깨달았거든요. 누군가에겐 그냥 색 바랜 종이 몇 장이겠지만, 저에겐 그 한 장 한 장이 11년의 어느 하루하루였습니다. 담담히 숫자를 옮겨 적으려는데, 자꾸 그 시절의 장면들이 겹쳐 보였어요.

영업이 끝난 고수 카데로 지점의 바 카운터 — 정리된 접시와 주류 선반

지난 7월 , 영업이 끝난 고수 카데로의 마지막 영수증들을 정리했습니다.

2. 나라리의 시선 — 2015년, 그 설레던 봄

2015년 1월, 우리는 카데로 지점을 인수했습니다. 그리고 4월 오픈까지,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가게를 채워 나갔어요. 벽을 칠하고, 주방을 들이고, 메뉴판을 몇 번이고 고쳐 쓰던 그 시간들. 드디어 문을 연 첫날, 남편은 첫 손님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며 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. 함께 일할 직원조차 없어, 가게에서 먹고 자며 하루를 통째로 그 공간에 바치던 사람.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 버텼나 싶은데, 그때는 그게 당연한 하루였습니다. 우여곡절도, 사연도 참 많았어요. 웃픈 일도 서러운 밤도, 그 문 앞에서 다 지나갔습니다.

고수 카데로 지점 홀에서 바라본 입구
첫 손님을 기다리던 그날의 문 — 모든 것이 시작된 자리
시작의 설렘도, 끝의 담담함도 — 결국 같은 문 앞에서 배웠습니다.
수 카데로 지점 유리창에 새겨진 KOSOO 로고와 창밖의 큰 나무
11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자란 나무 — 유리에 새겨진 이름 너머로

3. 나라리의 시선 — 잘 안 되던 날들이 가르쳐준 것

솔직히 카데로 지점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닙니다. 생각처럼 비즈니스가 되지 않아 좌절하던 시절이 길었어요. 문을 열어두어도 손님이 뜸한 날, 계산기를 두드리다 한숨이 먼저 나오던 날들. '이 길이 맞는 걸까'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물었습니다. 그런데 지나고 보니, 그 잘 안 되던 시간들이 사실은 가장 큰 배움이었어요. 그 매장에서 우리는 실수하는 법과 다시 일어서는 법을 동시에 배웠습니다. 카데로가 없었다면, 이후에 문을 연 다른 지점들도 없었을 겁니다. 첫 매장은 이익을 내주기 전에, 먼저 저희를 가르친 학교였던 셈이지요. 그래서 이 지점을 보내는 마음이 시원섭섭한가 봅니다. 고맙고, 또 미안하고.

수 카데로 지점 벽에 걸린 액자
벽에 걸린 11년 — 신문 기사 한 장부터 메뉴 한 접시까지
NARALEE의 인사이트
영수증을 정리하며 깨달았습니다. 사업은 자산이지, 굴레가 아니라는 것. 잘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'잘 보내는 것'도 엄연한 경영이라는 것을요. 첫 매장을 붙들고 있으면 추억은 지킬 수 있지만, 다음 걸음은 늘 미뤄집니다. 그래서 저는 감정은 감정대로 충분히 흘려보내되, 결정만큼은 숫자로 내리기로 했습니다. 미련이 아니라 판단으로요. 무언가를 잘 끝내야 다음이 열립니다. 카데로 지점은 이익으로 남은 게 아니라, 저를 지금의 저로 키워준 시간으로 남았습니다. 그래서 이 마지막 영수증 한 장을, 후회가 아니라 감사로 넘깁니다.
고수 카데로 지점 벽 선반의 금속 레터링 EAT AT KOSOO

11년 동안 벽 한켠을 지킨 글자 — EAT AT KOSOO
시작만큼 '잘 끝내는 것'도 미리 계획해야 한다
첫 매장은 이익이 아니라 '학교'였다 — 잘 안 되던 시간도 자산이다
감정은 감정대로 흘려보내되, 결정은 숫자로 — 미련이 아니라 판단으로

결론

무언가를 시작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면, 잘 떠나보내는 데는 그보다 조금 더 담담한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. 11년을 함께한 자리를 보내고 나니, 잘 보내는 일 또한 사랑의 한 방식이더군요. 마지막 영수증을 정리하며 잠시 감상에 잠겼지만, 이제는 웃으며 접습니다. 카데로 지점, 그동안 고마웠습니다. 여러분에게도 언젠가 잘 떠나보내야 할 '첫 자리'가 있으신가요? 그곳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남겼나요?

2026년 6월 28일 마지막 영업, 고수 랍슨에서 이어집니다
6월 28일 영업을 마지막으로, 6월 30일 카데로 지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— 고객님들께 드린 인사
당신의 '첫 자리'는 어디였나요? 댓글로 들려주세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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고수 랍슨 · 1128 Robson St (2층), Vancouver · 604-428-8414 · kosoo.ca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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